드레퓌스 사건
드레퓌스 사건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프랑스는 당시 보불전쟁으로
인하여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었으며
보불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프랑스의 여론은 끓어 올랐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서 였는데
이로인해 프랑스는 급격하게 국수주의적 보수주의적
제국주의적인 성격을 띄게 되었다.
1894년 독일 우편함에서 한장의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프랑스 기밀문서로써 알프레드 드레퓌스
육군소령이 스파이로 지목되었다. 결국 드레퓌스는
검거후 기아나의 악마섬으로 유배를 당하게 되었다
2년이 흐른뒤 피카르 중령이 재조사하여 드레퓌스가
진범일 근거가 없다고하였으며 에스테라지의 문체가
발견된 기밀문서와 같은것이 나타나게 된다 이때
드레퓌스는 씻지못할 역사의 죄인이 되어있었기에
재심사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국론은 엄청난
분열을 하게 된다
결국 진범으로 추덩되던 에스테라지는 영웅시되어
무죄판결을 받고 피카르 중령은 누설죄로 감옥으로 가게된다
이후 에밀 졸라가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 나는 고발한다 라는
공개편지를 대통령에게 보냈으며 드래퓌스에 대한 재심으로
요구하였지만 국수주의적 분위기에 졸라역시 엄청난
수난을 당하였으며 결국 런던으로 망명하게 된다
100년이 흘러서야 드레퓌스 사건은 자그 시라크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무죄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결국 음모론으로 결론이 났는데 드레퓌스는 100년이 지나서야
죄를 벗을 수 있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철저한 인권유린 탄압의 사건으로 인용되며
국가가 결정한 사항이 한 개인의 일생을 어떻게 바꾸는지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